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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주(9월 18일 ~ 9월 24일) >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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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전체자료 9월 3주(9월 18일 ~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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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2-09-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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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는) 본당 성령 소기도회(90)

-가르침 강사가 없 진행하는 기도회-

202293

일 시

 

장 소

 

진행자

 


성가로 기도회를 준비합니다.

 

함께 성령가족 수칙을 합송하십니다.

 

오늘의 기도회 주제와 지향을 설명 합니다.

기도회 주제와 성경말씀은 기도회장, 진행자, 외부강사가 있으면 외부강사와 서로 공유해야 합니다.

- 오늘 기도회의 주제순교자적 삶

- 지향 이 시대에 필요한 순교의 삶은? ” 입니다.

 

기도회를 준비하면서 하느님 현존을 의식합니다.

- 바른 자세로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몸에 힘을 뺍니다.

- 천천히 코로 숨을 들여 마시며 천천히 입으로 내쉽니다.

-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그리워함을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 천천히 숨을 들여 마시고 내쉬며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릅니다.

- 생수 자체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생명수의 물가로 인도하고 계심을

의식해봅니다.

- 생명수의 물이 나의 머리끝에서부터 천천히 흘러내려 머리, 얼굴, 가슴, , 허리,

다리, 발끝까지 씻어주고 계심을 느낍니다.

- 주님께서 메마른 우리의 마음을 생명수의 물로 씻어주시고, 나의 영혼이 목마르지 않도록 마음과 영혼을 씻어주고 계심을 의식합니다.

 

기도회 시작 (10)

성호경으로 기도회를 시작합니다.

다함께 주님의 기도성령송가를 바칩니다.

 

회원들의 기도 (20)

성가를 함께 부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면서
성가701< 나는 순례자 > 함께 부릅니다.

 

감사기도와 회개기도를 자유롭게 바칩니다.

-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며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잘못에 대한 회개의 기도를 바칩니다.

감사의 기도에는 후렴으로 모두가 찬미 받으소서! 영광 받으소서!”를 합송합니다.

시편의 구절이나 성경을 읽으셔도 되고, 부르고 싶은 성가의 곡을 말하면 함께 부릅니다.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는 기도, 회개의 기도를 솔직한 마음으로 바칠 수도 있습니다.

 

성가를 함께 부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가 596<주를 처음 만난 날 >을 함께 부릅니다.

 

개인지향의 청원기도와 통성기도 심령기도

- 각자 가지고 온 지향을 몇 사람이 돌아가며 바칩니다.

- 이성으로 하지 못한 기도를 옆 사람 의식하지 않고 다함께 통성으로 바친 후 심령으로 바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해주시는 주님께 의탁하며

성가610< 아 하느님의 은혜로 >을 부릅니다.

 

말씀 나눔(30)

주제 성경 2회 봉독

- 오늘의 주제 말씀인 마태 10, 26-33까지의 말씀을 다함께 천천히 봉독 하신 후, 각자가 침묵 중에 다시 눈으로 읽으십니다.

 

< 묵상 >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Imbert, Lurent Marie Joseph, 한국명 : 범세형(范世亨)] 주교는 1796년 프랑스 까브리에(Cabries) 지방의 조그마한 촌락에서 태어났으며 비록 가난하였지만 총명할 뿐 아니라 기도와 공부에도 열심이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묵주 만드는 법을 배워, 공부하는 한편 나이 많은 부친의 생활에도 보탬을 주었다. 그가 마음속에 동방의 포교지방에 대한 생각을 갖고 신앙을 전파하러 갈 결심을 굳게 다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액시(Axi) 대신학교를 다니면서부터였다.

그리하여 그는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후, 18191218일 신품을 받고 곧 중국의 사천성 포교지에 임명되어 프랑스를 떠난다. 앵베르 신부는 12년 이상을 사천에 머물렀다. 거기에서 그는 포교를 행하고 중국의 언어와 관습을 익혀으며, 모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고 또한 언어와 풍습을 익혔으며 또한 조선이라는 포교지에 파견될 것을 열렬히 희망하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1836년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에 이어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으로 그를 임명하였다. 앵베르 주교는 곧 조선에 입국하기 위하여 중국 내륙을 횡단한 후 18371216일에 봉황성의 변문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북경으로 가던 사절단에 다섯명의 신자가 있었고, 그 중 조신철 가롤로와 정하상 바오로 등의 협력을 얻어 1217일 밤에 조선신자와 함께 변문을 떠나 압록강의 얼음을 타고 의주 관문을 숨어 넘어서 13일 후에 한양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해서 조선의 신자들은 교회 창설 53년 만에 처음으로 주교를 맞게 되었다( 초대주교인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고 별세하였다.). 3개월 동안 조선 말을 배운 앵베르 주교는 신도들의 고백을 듣고서 성사를 줄 수가 있을 정도였다. 조선교회는 오랜 재난을 겪은 후라 주교를 맞이하여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신자의 수는 날로 늘어 갔고, 반면 앵베르 주교의 고생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몹시 지쳤고 크나큰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납니다. 세시에는 집안 사람들을 불러 기도 드리고 세시 반에는 예비자가 있는 경우 성사를 주고, 혹은 견진을 주는 것으로 성무의 집행을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미사를 드리고 감사의 기도가 따릅니다. 해 뜨기 전까지 성사를 받는 신자가 20여명이고 ... 나는 시장기 때문에 고통을 많이 당합니다. 왜냐하면 두시 반에 일어난 다음 정오까지 기다려서야 영양가치도 별로 없는 맛 없고 양도 많지 않은 식사를 하는데, 춥고 건조한 기후인지라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고생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으니 그것을 끝맺어 줄 칼질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잘 갈 것입니다 ...'

 

이때 이미 조선에 와 있던 모방 신부와 샤스땅 정 신부와 함께 그는 지방을 순회하기도 하고,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외교인 어린이에게 영세를 주는 운동도 전개하였고 그 결과 1839년 초에는 신자가 9,000명이 넘었으며 성직자 양성에 힘을 쏟아 세 소년을 유학 보냈고, 어른으로서 적임자를 뽑아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치는 등 교회발전에 다각적인 노력을 하였다.

그러던 중 기해박해(1839)가 시작되었고 배교하는 신자들이 많았으며 따라서 앵베르 주교와 샤스땅 신부, 모방 신부가 전교하고 있음도 알려졌다. 엥베르 주교는 배교자 김여상의 간계로 체포되었고, 다른 두 신부는 범 주교의 권유로 자수하였다. 이것은 신자들을 더 이상 죽음으로 몰아 넣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사랑에서였다. 군문효수 언도를 받은 세 선교사들은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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