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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심포지움 구마심포지엄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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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산나
작성일 14-07-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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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a - 3
심포지엄 3-  참가자와 질의 응답시간
 
  1. 까리스마와 직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까리스마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써 누구에게도 허락을 받고 내려오는 선물이 아니다. 바오로 성인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 째 서한 12장에서 까리스마는 성령의 드러나심으로써 원하시는대로 활동하신다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께 아무도 규정을 정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 생활하면서 질서를 지키며 살도록 초대받았다.
 
내가 뻬스까라 대교구로 갔을 때 교구장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설교사목에 주력해 주십시오.”  교구장께서는 내가 행하던 몇몇 설교를 이미 들으셨던 것이다. 교구장께서는 사목방문을 하시면서 어느 본당을 방문하시기 전에는 항상 일주일 전에 나를 먼저 보내셔서 신자들을 준비시키는 설교를 하도록 시키시곤 하셨다. 말씀의 선물은 교구장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시절 자는 굉장히 수줍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 주님, 제가 말도 못하는 주제인데 어떻게 사제가 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부끄럽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계속 이런 기도를 드렸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주님께서 이런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다. “내가 나귀의 입도 열어 주었으니(발라암의 나귀민수기22,28-30참조), 내 입도 열어주겠다.”  사제가 되고 난 뒤로 지금까지 내 사목분야는 설교사목이다. 선물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지만 공동체 안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이고 우리 중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공동체는 교회로부터 지도를 받는다.
 
어느 날 치유의 기도를 해도 되겠느냐고 주교님께 청하였더니 “좋은 것이긴 하지만  이 번 기회에는 하지시 않는게 좋겠다.” 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였다. 주교는 교회의 목자이며 까리스마들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주교님의 분별이 필요하고 그게 아니라면 본당 사제를 통한 분별이 필요하다. 선물의 존재에 대해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이 선물이 적합할지 분별해서 다양한 사목 활동에 보다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고,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은 순명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내 개인의 말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친교 로 살아가기 위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나의 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까리스마를 받았을 때 항상 주교님으로부터 그 직무를 인정받아 활용하도록 격려를 받든가 활용여부를 확인 받아야 한다.
꼬뻬르띠노의 성 요셉(S. Giuseppe da Copertino)은 대단한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아서 많은 이들이 기적을 얻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수도원을 찾아가곤 하였다. 그런데 수도원 원장이 수도원에 방해가 된다며 이를 저지하였다. 어느 날 공사장에서 인부 한 명이 건축 골조바침대에서 낙상하는 것을 보았다. 성인은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 그를 도와줘도 되는지 허락을 얻기 위해 곧바로 수도원 원장을 찾아갔다. 성인이 돌아올 때까지 인부는 공중에 그대로 떠있었고, 다친 곳 없이 천천히 내려 올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성인은 돌아가실 때까지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비밀 장소에서 지내셔야 했다.
 
 
2. 은사는  교도권의 가르침에 반하지 말아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여러 번에 걸쳐 교회의 백성안에 존재하는 카리스마들을 재발견하도록 격려한 바 있지만 특별히 성년에 이를 더욱 강조하셨다. 주교들에게도 교회의 규범 안에서 교회 이를 사용하도록 하라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한 주교가 어느 특정 평신도에게 구마기도 혹은 구마직무에 충분히 임명할 수 있다. 옛날에는 교회에서는 부제품을 수여하기 전에 먼저 구마품을 수여하였다. 즉 아직 평신도 지위에 있을 때 수여했었다는 뜻으로써 구마품은 사제직무와는 연관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교회의 방법은 현대의 교회가 조금은 다르게 행동했을 법한 것이 있는데 이는 사목적인 이유에서 그렇다. 고해성사와 교회와의 화해를 필요로 하는 양심에 관계된 몇 몇 문제들은 사제적 직무 활동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가 고찰한 것처럼 실제로 많은 문제들의 이면에는  죄가 숨겨져 있어서 사제의 개입이 요구된다.
 
반대로 구마는 권위를 가지고 사탄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구성되어 있다. 그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교는 교회의 권위를 표현하며 주교가 원하는 사람을 구마직에 임명할 수 있다.
라벤나  Ravenna 에는 유명한 구마 수녀가 있는데 주님으로부터 이런 까리스마를 받았고 주교님의 임명하에 구마직을 수행했었다. 평신도를 구마직에 임명하게  훌륭하게  구마를 행할 수 있다.
 
이탈리아 베로나Verona에는 까리스마가 있는 평신도 남자 수도자가 있었는데 일 년에 수천 명씩 면담을 하고 구마를 하곤 하였다. 유명하신 몬시뇰께서 은퇴하신 뒤 그 형제와 함께 생활하시면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고해성사를 주시곤 하셨다. 구마를 하는 형제는 찾아오는 신자들을 개별적으로 면담을 한 뒤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묜시뇰께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악마를 쫓아내는 선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공동체 안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은 주교의 임명을 필요로 한다(교리성 장관 추기경이셨던 라칭거 전 교황이신 베네딕또 16세의 사인이 있는 서한참조) .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내면 안에서 기도해야 할 수 있다. 누군가 이런 선물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면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항상 주님께 향해야 하고, “주님, 이 사람을 해방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는 못한다.다시 정리하자면 구마를 거행할 수 있는 권한은 사탄에게 직접 명령하는 것으로써 교회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교회에 순명할 때 절대로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된다.
 
3. 이런 질병을 과대망상증이라고 부른다.
이런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은 항상 누군가로부터 쫓긴다고 믿는다. 어디를 가든지 모든 사람의 눈이 자신을 관찰하고 쳐다보며, 비난하면서 심지어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다고 까지 믿는다. 이런 사람의 치유를 위해 기도는 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단적으로 부마자로 규정하기 전에 혹시라도 진단 내려진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 연로한 상태지만 전에 수도 생활을 하다가 나온 자매는  어디에서든지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관찰한다고 믿고 있었다. 결국 나를 찾아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와서 그 영을 내쫓아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몇 달 뒤 그 자매의 집을 방문해 만났는데 훨씬더 편안해 보였고 환한 모습이었다. 조카의 말에 의하면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그 증상은 점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약으로 치료했을 때 효과를 내고 있다면 이는 부마가 아니라 질병이라는 분명한 증거다.
 
이런 경우는 히스테리나 편집증세,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의 증세와 악마적인 현상을 분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런 경우 상당한 조심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런 경우를 맡은 구마사제가 정신질환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면 이 분야의 전문인들에게 조언을 청해야 한다. 이런 전문의들은 이 현상이 실제적인 어떤 질병에 의해 유발된 것인지 아니면 의심스러운 어떤 증상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정확한 진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병원치료를 통해 환자가 호전증세를 보인다면 이는 부마현상이 아니라 당연히 질병인 것이다.
여하튼 이런 경우 사제가 축복을 해주고 주님께서 개입해 주십사 청하는 기도를 드린다면 절대로 실수를 범하지는 않게 된다. 또한 고통받고 있는 이를 신앙으로 위로하고 곁에 있어주면서 악을 대항한 전투에서 기도와 신앙으로 힘을 북돋우는 것도 좋다.
 
4. 질문 : 사적 구마와 공적 구마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적 구마는 구마사제와 고통당하는 사람과의 개별 면담으로서 약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예식서의 기도가 이어지거나 혹은 방언기도 등, 영감에 의해 나오는 기도를 하기도 하고 예식서의 기도 일부분을 하고 영감에 의한 기도를 하기도 한다.
공적 구마는 공동체 내에서 하는 것이다. 이 직무를 맡은 사제는 영대를 메지만 사제의 권위가 필요하다면 다른 제의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런 공적 구마는 예식으로 하는데 가능하다면 예식서가 정하는 대로 거룩한 장소, 즉 성당에서 하는 것이 좋다다.  구마예식서의 기도는 당연히 구마사제가 적합하게 할 수 있지만 교회의 가르침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어떤 구마사제는 성체를 현시해 둔 상태로 구마예식 기도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제는  잘보이도록 십자가나 성화를 앞에 두기도 한다.
청원의 구마기도가 있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개입해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이다. “ 주님, 이 영이 나가도록 당신께서 명령해 주시기를 당신 이름으로 청합니다!”  이런 구마 형식은 해방의 기도 그 이상으로  주님께 향하는 기도로써 모든이가 할 수 있는 기도이다. 많은 이들은 구마기도에 대한 교회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이런  해결책을 사용한다.
 
명령법의 구마에서 구마사제는 권위를 가지고 사탄에게 직접 명령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서 당장 나가도록 명령한다.” 혹은 장소가 악마에 의해 전염되었을 때는 “이 장소들로부터 당장 나가도록 명령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너를 묶고 사슬로 엮어 더 이상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예수의 보혈의 이름으로 너를 묶고 사슬로 죄어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명령한다.”  이 경우의 활동은 권위로서 사탄과 대항하는 것으로써 교회는 이런 형태의 구마에 있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실제 악마가 존재하는지의 여부가 분명하게 밝혀진 뒤에야 악마에게 명령조의 구마를 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으며 당연히 교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런 질문을 하신 분이 신부님이시다. 고해사제이신 그분께 고해자가 찾아왔고 악마의 존재에 의한 어떤 특정한 요소들을 발견했을 때 고해사제로서 사탄에게 명령할 모든 권리가 있다. 예를 들어 “주님 당신이름으로 청하오니, 이 영을 물리쳐 주소서!” 이 경우 교회로부터의 특별한 허락이 필요없다.  사탄에게 직접 명령법을 사용하는 구마기도의 경우는 꼭 교회의 허락이 필요하다.
 
나는 사제로서 선물은 지녔지만 교회의  사탄에게 명령할  권한은 부여 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구마직무를 임명받지 않은 사제들은 필요하다면 그때 그때 주교에게  이를 청하곤 한다. 교회로부터의 임명과 더불어 사제는 모든 교회의 이름으로 구마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1997년 끼에띠Chieti 대교구 대주교님께서 이런 구마사제직무를 수행하도록 나를 부르셨다. 참고로 나는 뻬스까라Pescara교구 소속이다. 그런데 낙태의 죄를 사해받기 위해서는 주교님의 허가가 필요하므로 다른 교구 사제로서 이 허락을 받기 위해 끼에띠 대교구까지 매 번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나로서는 총대리 신부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총대리 신부님께서는 “이 직무를 수행하시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신부님은 모든 권한을 지니고 계십니다.” 라고 하셨다. 가끔씩 주교는 어느 특정한 상황에만 권한을 부여하거나 그 어떤 특수한 기회에만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추정적 허락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사제로서 구마직무를 수여받지 않아서 구마예식을 행할 권한이 없지만 고통 당하는 이가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고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인 경우다. 그렇다면 나의 장상께서도 이런 상황을 아셨더라면 분명히 허락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하에 구마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구마직무를 받았다는 가정하에 구마를 행하게 된다. 이 경우 추정적 구마직무 승낙을 사용한다.
 
 
5. 어느 사제의 질문에 대한 답
질문하신 신부님은 그 사람을 도와주셨기 때문에 분명 천국에 가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허락없이 구마를 했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허락을 받지 않고 본의의 의사 결정에 따라 한 사제가 구마를 했다고 해서 불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토론하고 있는 것은 공식 절차를 통해 교회의 권한을 부여받은 상태에서 공동체 안에서 공식적으로  구마예식 기도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교회가 깊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만 이런 직무의 권한을 맡기는 이유는 민감성 차원에서다.
 
현대 교회는 이 직무를 재발견하는 중이다. 어느 날인가 인도 의 몸바사 Mombasa사제인 루푸스 뻬레이라Rufus Pereira   는 이런 말을 했다.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자신의 도시에서 구마사제는 유일하게 본인 한 명 뿐이라는 것이다. 구마사제 직무의 필요성은 매우 컸지만 주교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독일에는  어떤 구마사제도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 이렇듯 세상 여러 나라에서는 어떤 구마사제도 임명하고 있지 않는다. 이유는 주교들 자신들 조차도 이 분야에 대한 적절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 구마사제협회는 매 2년에 한 번씩 로마에서 회의를 하는데 로마에서 회의를 해도 전세계 구마사제들이 교황님을 알현하기 위해서 무려 15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고 바티칸의 스위스 근위병들이 알현을 막은 것이 아니다. 교황님 알현을 주관하는 부서의 몬시뇰들이 국제구마사제협회 사제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교황님께서 드디어 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오히려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교들과 사제들을 격려하셨다.
 
구마사제의 권한을 지니지 못한 것은 주교가 아무에게도 이런 권한을 주지 않기 때문으로 양심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도둑들에게 매를 맞아 쓰러진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그 곁에는 사제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성전에서의 봉사가 급했다. 즉 성전봉사를 위해서 정결해야 했던 사제는 피를 흘리고 쓰러진 사람을 만질 수가 없었다.  불결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제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저 이를 만질 수가 없어.” 왜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사제를 등장시키셨을까? 자선은 최고의 율법으로 전통율법보다 우선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활동을 금하고 있었던 안식일에도 사람들을 치유하셨고 해방시키셨다. 자선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위에서 방금한 말이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어느 한 영혼의 선을 위해 내가 지금 이 일을 해야 한다면  자선은 모든 것에 위에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선을 위해 다른 방도가 없는 상태라면 양심이 시키는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뒤 교회 장상에게 찾아가 “제게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이런 방법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려야지 구할 수도 있었던 한 영혼을 손을 놓고 바라보다가 사탄의 손에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교회법은 적합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유효한 것이다. 끼에띠 대교구 대주교님께서 그 교구에서 구마사제직을 수행해 달라고 요청하셨을 때 하신 말씀이 있다. 여러 번에 걸쳐 여러 명의 사제들을 구마사제로 임명했었지만 진짜 부마상태를 단순한 신경병으로 오인하는 등 오히려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만을 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자체 대교구내에서 당분간 구마사제를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해를 입히는 구마사제들이 존재한다. 혹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하고 준비되지 못한 구마사제들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보는 것마다 악마로 싸잡아 보는 이들도 있다. 뿐만아니라 단순한 인간적 문제가 있는 곳에  최소한의 교육이 필요하다. 이 직무의 사목적 활동을 감시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다.
 
지나치게 과장되게 두려워 하는 시대가 끝나고 주님께서 개입하시길 기도하자.  이런 구마사제 임명은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병든이들을 치유하고 악마를 쫓아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어떤 특정한 이성주의적 신학이 많은 신학자들과 사목자들로 하여금 사탄의 존재를 부정하도록 이끌었으며 악마로부터 발생되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되었다.  1970년 스위스 신학자인 허벗 학Herbert Haag (1915-2001)은 자신의 저서 “폐업한 악마” (1970)로 카톨릭 신학계에서는 최초로 사탄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탄의 객관적 현실성을 부정하는 첫 번째 신학자가 되었다.  그 뒤 많은 다른 이들이 이 현실을 부정하였다. 1974년 허벗 학의 주장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요셉프 라칭거 추기경이며 전 교황 베네딕또 16세다. 라칭거 추기경은 1974년 “설교와 도그마” 라는 저서로 이를 명명백백 반박한다.
 
우리는 이들의 관점에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관점은 성서적이지도 않고 교회 교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교회 권위를 존중하자 하지만, 잘못된 관점에 대해서는 양심적으로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 교회의 권위라도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나에게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교리에 의한 양심의 자유라면 교회의 교리는 그 어떤 권위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회를 존중하고 교회의 자녀들이 지닌 한계와 교회가 지닌 몇 몇 직무의 한계도 이해해야 하지만 양심을 반해서 까지는 하지말자.
예식서에 있는 구마예식은 예식 진행자가 따라가야 할 순서이지만 구마사제가 예식을 진행하면서 자신에게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예식서의 정신에 어긋나서는 안된다. 많은 사제들은 영감을 받아서 즉석에서 하는 기도를 표현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염경기도화된 형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성령쇄신 운동에서는 영감을 받은 즉석 기도를 드리는 것에 익숙해 있다. 구마사제이며 카리스마를 지닌 내 친구사제는 44년 동안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2006년 빠도바 교구의 구마사제로 임명을 받았다. 그는 구마예식서의 기도문을 사용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맞게 구마사제 자신에게 적합한 기도들을 준비한다고 했다. 성령께서는 믿음을 통해 활동하시기 때문에 예식서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안내서이고 하나의 보조자료 다. 하지만 구마예식을 집전하는 사제 자신이 자신에게 맞는 기도를 해나갈 능력이 된다면 자유롭게 해도 무방하다.
 
구마예식서가 발간된 뒤 라틴어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자 구마사제들 간에 대단한 논쟁이 일어났었다. 많은 구마사제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심지어 국제구마사제협회 창설자이신 아모르트 가브리엘 신부님 조차 부정적이셨다. 이 새로 발간된 구마예식서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고 받아드리지 않았는데, 가브리엘 아모르트 신부에 의하면 라틴어로 드리는 구마 기도문이 훨씬 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라틴어에서 번역한 예식서를 읽어보면 번역된 표현들을 가능하면 가볍게 함으로써 사탄에게 향한 명령법을 약화시켰다. 새로운 예식서는 성령께 청하는 기도가 많이 첨가 되어 있지만 사탄에게 행하는 나가라는 식의 명령조의 표현들이 축소되어 버렸다.  예수님의 권능 안에서 믿음이 활동하는 것이지 언어나 자료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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