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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 구마 심포지엄 8 - 몇몇 고찰들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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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 구마 심포지엄 8 - 몇몇 고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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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로사
작성일 14-10-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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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 구마 심포지엄 8
 
구마심포지엄 제 8 강의
 
몇몇 고찰들.
전체적으로 우리 심포지엄에 결론을 짓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룬 모든 주제들을 소소하게 훓어보는 방법이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요소들을 다시 요약 정리 해보겠습니다. 심포지엄 기간 동안 성령께서는 많은 것들을 제안해 주셨고 그 중에서도 우리 인격형성에서 중요한  정점이 되는 요소들을 집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악은 하느님으로부터의 분리와 죄로인한 무질서에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치료방법으로는 항상 악의 원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구마직을 맡은 사람은 몇가지 위험에 놓입니다. 이미 고찰한 것처럼 고통 당하는 이에게 유익을 주기 보다는 피해를 유발시키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누군가 악마에 의해 끌려다니거나 부마증세를 보인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을 회피하고 멀리하면서 고립시키는데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자칫하다간 히스테리와 부마상태를 혼동할 수도 있습니다. 히스테리는 우울증의 결과로 올 수 있고, 정서적 메마름, 사랑의 결핍, 성생활의 불만족 등으로 올 수 있습니다.  히스테리의 어떤 현상들은 부마현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도 있어서 교회는 정확한 분별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영역을 볼 수 있는데 이 영역은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몇 년전 어느 텔리비젼 프로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한 다큐 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는 젊은이가 군입대를 하자 그 집안에서는 이상한 초월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과들이 날라다니는가 하면 집안 층계들을 뛰어 내려오는 현상, 집안 가구들이 혼자 이리저리 이동하는 현상등이었습니다. 군입대한 남자의 동생은 집에서 이런 현상때문에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를 하고 형이 돌아오자 동생은 편안함을 느끼고 집안의 이상한 현상들도 잠잠해졌습니다.
일어났던 이런 모든 현상들은 분명 인간의 영에 의한 활동이지만 정신적인 왜곡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 정신은 사물에 대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꼬마 아이가 자동차 밑에 깔리게 되었고 엄마는 고통으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한 손으로 자동차를 번쩍 들더니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뉴욕 유엔 본부에 몇 년동안 인도의 힌두교 명상 수도승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2,000kg에 육박하는  무게를 아주 간단하게 들어올렸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식은 사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물을 지배할 수 있는 기술들도 존재합니다. 저는 서양에서 이런 기술을 연마하려는 다양한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개중에는 이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기술의 유일한 결과는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왜곡시켜서 얻어내는 기술을 연하마다가 많은 이들이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식은 어떤 조건이 만들어진다면 사물에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분별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구마실천과 해방직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분석하기로 하겠습니다. 구마예식서는 악령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함부로 구마예식을 하지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구마예식서 규정 주의사항 16항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구마사제는 구마예식 대상자의 승인이나 대상자로부터 정확한 부마상태라는 것이 윤리적으로 확인 되지 않은 이상 명령법의 구마나 구마예식을 집행할 수 없다.”
- 카톨릭 교회내 명령 구마식의 실천 영역에 대해서 1985년  신앙교리성 라칭거 추기경 장관의 서한이 있습니다. 이 서한은 구마 규정에 대해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으로써 명령범의 구마식은  주교의 위임이 필요하고 반항한 천사들을 대항해 치뤄지는 예식인 구마예식서를 일반 평신도들이 상용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은 1985년 라칭거 추기경의 서한 전문과 2000년 9월 14일 해방과 치유예절에 관한 문서를 소개하겠습니다.  
 
신앙교리성
1985년 9월29일 구마예식 규범에 대한 담당자들에게 보내는 서한
면 년 전부터 몇 몇 교회 단체들이 악마들의 영향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아주 구체적인 목적으로 모임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증대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꼭  그 자체로써 구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런 모임들이 사제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성청 신앙교리성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요청들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이에 본 성은 주교들에게 아래와 같은  답변을 드리는 바입니다.
1. 교회법 1172항에 의하면 구마직무를 받지 않았거나 이에 해당되는 위임을 받지 않는 자가 부마자들에게 합법적인 구마식을 행할 수 었다고 못박고 있습니다(1). 교구의 직권자는 신심과 학식과 현명과 생활이 완벽한 탁덕에게만 이 허가를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2). 주교들은 이 규범을 철저하게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2. 그 결과 신자들은 사탄과 하느님께 반항한 천사들을 대항해 구마예식서를 사용할 수 없으며 교황 레오 13세의 명에 의해 발간된 구마 소책자도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체 구마예식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주교들은 위의 사항에 대해 필요하다면 신자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3.마지막으로 이와같은 이유때문에 주교들은 구마직 위임을 받지 않은 자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면서 악마로부터 해방하고 이를 목적으로 악마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하면서 그 정체성을 밝히려는 구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이는 상당히 심각한 부마증세를 보일지라도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자는 이의 사용을 금함 –   그렇다고 이 규범이 신자들을 기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이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악으로부터(마태 6, 13) 우리를 구하기 위해 기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끝으로 사목자들은 이 기회에  고유한 성사들과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전구, 천사들과 성인들의 전구가 악령들을 대항한 신자들의 영적 투쟁에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인사를 드립니다.
신앙교리성 장관 요셉 라칭거 추기경
차관 알베르또 보보네 Alberto Bovone
 
하느님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기도 규범– 2000년 9월 14일
두 번째 부분에서는 10 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특별히 몇 몇 규범들을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1 – 모든 신자는 하느님께 치유를 얻기 위해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기도가 교회내에서 이루어지거나 그 다른 거룩한 장소에서 진행될 때 탁덕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2 – 치유의 기도는 교회 직권에 의해 인준된 전례서들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 기도는 전례적인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전례적인 것이 아닙니다.
5 - § 1.  일례로 기도회들이나 렉시오 디비나 등에서 치유기도가 전례적 의식 양식과는 다른 방도로 진행될 때 교회법839 § 2 조가 정하는 대로 교구 직권자들은 교회의 규범에 온전히 부합하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 2. 전레적이지 않은 자유기도와 전례 의식에서 선포되는  기도와 혼동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3.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이런 해방기도 모임, 특히 이런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히스테리같은 형태, 가식적인 형태, 선정주의적인 형태, 연극적인 형태 등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 - § 1. 위 5항 3번에 준하여 전례서에 명시되어 있는 환자들을 위한 기도와 거룩한 미사 중에 바쳐지는 기도, 성사들과  시간경에서 바쳐지는 기도들을 이외에 전례적이거나 비전례적인 어떤 치유의 기도도 삽입되어서는 안됩니다.
  2. § 2. 제 1 번에서 언급한 예식들 중 보편지향 기도 혹은 신자들의 기도에 환자들을 위한 기도가 준비 되었다면 특별한 지향을 첨부할 수 있습니다.
Art. 8 - § 1. 구마직무는 교구 직권자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그것은 교회법 1172조가 정하는 대로이며 성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행된 서한과  1985년 9월 29일 로마예식서Rituale Romanum가 정하는 대로여야 합니다..
§ 2. 구마기도는 로마예식서Rituale Romanum에 포함되어 있는 구마기도들은 치유의 예절, 전례적인 것과 비전례적인 것들로 구분되어 있어야 합니다.
 § 3. 이런 구마기도들을  거룩한 미사, 성사들, 시간경 등에 포함되어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9 항- 치유의 예절이나 전례적이고 비전례적인 의식들을 주도하는 사람은  회중으로 하여금 절대적인 경건함이 감도는 침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도록 이끌어야 하며, 모인 사람들 중에 누군가 치유를 받았다면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절이 끝난 다음, 단순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치유받은 사람들의 경험담이나 체험을 수집하거나 듣고 교회 직권자에게 보고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의 알현에서 신앙교리성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한 위의 사항에 동의해주셨고 이를 출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성청 신앙교리성, 로마, 2000년 9월 14일 십자가현양 축일에  교리성장관 추기경  요셉 라칭거
차관. 타르치시오 베르또네 . Tarcisio Bertone
 
  • 이것은 시포지엄 기간 내내 우리가 고찰했던 사탄에게 직접적인 명령을 하는 명령법의 구마예식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 예식은 절대적으로 주교와 그에게 위임받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부제품 전에 받을 수 있는 소품으로 구마품을 주었고, 이는 평신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성직인 부제품 전에 수여하는 품이기 때문에 평신도들에게 해당되는 품이었습니다. 이런 품계가는 교회의 교리처럼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서 사목적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공의회 이전 교황 레오 13세의  구마식에 포함되어 있는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는 모든 교회에서 미사가 끝난 뒤에 회중과 함께 봉헌되곤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복사를 서곤 했는데 본당신부님이 미사를 끝내시면 모든 회중과 함께 항상 이 기도를 바쳤던 것을 기억합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19세기 말 환시중에 악마를 보십니다.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느 한 세기를 장악하도록 허락하신 것을 환시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20세기에 2천만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1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도 주장합니다. 이 환시를 보셨던 교황께서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성령에 관한 회칙을 발표하시면서 교회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쇄신도록 이끄시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를 사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성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를 곡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 기도를 바치지 않기로 했는데 이유는 신자들에게 사탄에 대한 괜한 두려움을 조장하지 말자는 의도에서 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을 두려워했고, 다양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탄을 이기고 대처하력고만 했지 실제적으로 필요한 성경을 손에 들었던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염두해 두었던 것은 신앙의 여정에 질서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여기에 계신 여러분이 1,000명의 신자들을 불러 놓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확신 없는 대답을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말의 뜻은 많은 여러 가지 하고싶은 일 들 중에 하나가 구원받는 것이란 말입니다
  •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확신이고 정의이며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고 성령의 자유 안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교회는 가끔씩 사목적인 이유에서 그 방향을 변경하는 경우를 이해하게 됩니다. 사제들의 독신제도 로만 카톨릭 교회의 규칙이지만 이집트와 이스라엘 성지의 가톨릭 교회나 그 외 다른 가톨릭 교회의 사제들은 혼인을 합니다.  규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규칙들이 신앙의 정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제들의 독신제는 교회의 규칙 중의 하나지만 같은 카톨릭 교회은 이집트교회나 이스라엘 성지와 그 외 다른 지역의 카토릭 교회 사제들은 결혼합니다. 이런 규칙은 신법이 아니라 교회의 방향으로써 사목적인 이유로 해서 바뀔 수 있습니다.
최신부님께서 악령들에게 당장 물러가라고 명령했다고 해서 죄를 범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거룩한 행위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규범이 있고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순명은 구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 가장 즐겨 받으시는 것이고 사탄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피해를 입히는 것이 됩니다. 여기까지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사탄의 방해을 받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제해두고 싶은 것은 이 직무의 효과도 또한 교회의 규범과 교회가 제시하는 예절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직무를 맡은 사람의 까리스마와도 연관을 맺고 있는 직무입니다.  모두가 같은 까리스마를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이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활동이어야 합니다. 어떤 신부님들은 참으로 대단한 분별의 영을 지니신 분들이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화상담만으로도 정확한 분별을 하시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은사는 받지못했기 때문에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연구하는 중입니다.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의 사촌을 데리고 왔는데 악마에게 묶여 있으니까 축복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길에서 구걸하는 외국여자를 만나서 5,000리라(한화 2000원 정도.역주)를 주었더니, 구걸하던 사람은 너무 많은 액수라며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지난 주일 날 몸이 아프셨군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진짜 아팠기 때문입니다. 이어 그 외국 걸인은 “지금도 아프신데 옆집 아주머니가 당신에게 피해를 입힐 요량으로 부적과 주문을 썼습니다.” 정말로 몇 년 전부터 이웃 여자와는 인사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였습니다. 여기까지 몇몇 사건을 알아 맞춘 걸인 여자가 맞는 분별을 했다고 나를 찾아온 자매가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증명해내지 않고는  바른 분별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걸인 여자보다 우위에 있고 훨씬 나은 분별을 한다는 자만심에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단지 주의를 요하기 때문입니다. 행위의 확실성과 악마의 존재 여부를 교회 권위를 지니고  조사해야 합니다. 구마직무를 부여받은 사람은 자신의 분별을 동원해야하고 이미 증명된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수집한 정보도 분석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하느님으로부터 각각에게 적합한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런 선물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활동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 사촌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자매에게 저는 환시를 보거나 미럐를 예견하는 은사는 없고 그 걸인여자가 했다는 말을 증명할 수도 없는 입장이지만 지금 간단한 축복기도를 해주마고 했습니다. 자매를 성모상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저는 제 마음속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 마음에 영감을 주셨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즉, 과거 그 집안에서 누군가 그 자매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일 없다며 한사코 부인하다가, 14살 때 2 년 동안이나 오빠와  근친상간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저는 더욱 솔직해지라고 격려하면서 오빠가 먼저 시도한 것이 아니라 자매 쪽에서 오빠를 유혹하고 시발점이 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인했습니다. 나를 찾아온 이 자매에게는 신실한 통회와 하느님의 용서가 필요했던 것이었고 먼저 양심성찰을 하도록 시간을 준 다음 잘 준비된 고해성사로 이끌었습니다. 고해성사 중에 하느님의 자비를 수락하고 오빠에게 했던 모든 피해와 악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청하도록 인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좀차적으로 묶인 것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그 외국 걸인여자의 식별대로 행동했다면 저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구마를 그 자매에게 했어야 했을 것이고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 잘못을 떠넘겨 가면서  더 큰 문제로 발젼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옆집이 아니라 바로 나를 찾아온 이 자매 내면에 있었던 것입니다.
 
대화
교회는 고통 당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도움을 주면서 그들의 영혼을 개방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개적인 대화를 나누다보면 마음을 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특정한 분위기가 마련되면 영혼이 훨씬 더 쉽게 열리고 진심을 담아 대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고해소에서 고해사제를 만났을 때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공개적인 장소가 아닌 곳이 좋습니다.
 
개인사 재구성
고통 당하는 사람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 개인과 그 가족들의 과거와 현재의 사생활 전반을 재정립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의 관계들, 그중에서도 부모와 가족과의 관계로써 우리 각자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기본적인 요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미 심포지엄 내내 언급한 대로 치유되지 않은 악,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지지 않은 악은 반복되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1998년 한 여성이 저를 찾아와 매일 밤 불가사의한 존재에 의해 자신과 딸이 성폭력을 당하고 성적 유린을 당한다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 여성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지만 17살 되던 해 같은 성폭력에 희생된 경험을 있다는 사실을 면담 중에 밝혀냈습니다.  혹시 가족 안에 누군가가 이와 같은 폭력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이 있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께서 친구들이 집에 찿자오면  영웅담처럼 하던 이야기가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아프리카 전쟁에 참여했던 아버지는 저녁만 되면 군영을 빠져나와 군부대 주변 마을에 사는 처녀들을 겁탈하며 농락했었다는 것입니다. 또 군부대 장성들까지도 아프리카 여성들을 성노리개로 사용하는 것을 묵인해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여성이 겪고 있었던 고통스러운 현상이  가족사 속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또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떤 쪽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할지 알려주는 예입니다. 저는 그 여성에게 아빠를 용서하는 기도를 하게 했고, 아버지의 범죄행위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아픔을 보상해 주십사 주님께 청했습니다. 그 여성이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죄들이 거룩하신 예수님의 피로써 정화되도록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거룩한 미사는 예수님의 희생제사, 죄의 용서를 위해 뿌려진 피의 제사입니다(보혈은 죄인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불꽃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보혈로 씻어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심을 의미함). 3일 뒤 이런 현상이 사라졌으며, 5일 뒤에는 딸에게 일어나던 같은 현상이 사라졌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런 현상은 재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와의 관계들
특정한 현상들은  자주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다시 반복되는 현상들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고찰한 것처럼 영들은 서로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육체들은 시각과 청각, 감각등을 통해 관계속으로 들어갑니다. 예들들어 여러분이 지금 저를 바라보고 계시고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시지만 영혼들은   친교와 존재를 통해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으로 라는  관계속으로 들어갑니다. 카톨릭교리서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잠든 형제들과 (…) 결합은 조금도 중단되지 않으며, 더욱이 교회의 변함없는 신앙에 따르면, 영신적 선익의 교류로 더욱 튼튼해 진다.” (955번 참조) 그렇기 때문에 죽은 이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성령안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악령안에서 이런 관계가 성립된다면 당연히 악과의 관계 성립이 이루어집니다.
 
죽은이들과의  관계
우리는 죽은이들 혹은 죽음과 절대로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주님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만약 제가 죽은 제 형과 관계를 맺는다면 제 관계는 죽은 관계이며 죽음과의 관계로서 사탄의 힘에 짖눌린 것입니다(히브리 2, 14-15 참조). 하지만 제가 주님 안에서 생생하게 그를 바라보고 하느님의 영관안에 그를 잠기게 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감싼다면 제 죽은 형과 저와의 관계는 거룩합니다. 사랑이시며 기쁨이시고 평화이며, 영원한 생명이신 분, 죽음이 아닌 성령안 에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초월적인 많은 현상들이나 주문이나 부적에 의한 영향들은 그래서 죽은이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이혼한 남성이 제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즉, 4형제중 3형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그 집안 내력 중에 누군가 타여성을 농락한 사건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15살 되었을 때 보쌈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대해 가족 중 누구라도 용서를 빌었는지 물었지만 그 자녀들중 아무도 이에 대한 용서를 빈 일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조부모가 같은 집에서도 별거 중이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자식들은  마지막 인사 조차 건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죄는 통회와 용서, 하느님의 자비 속에서 정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저질러진 죄는 그대로 남이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주변 환경 속에서 영들끼리 서로 연계하고, 새로운 피해를 생산해 내면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했던 남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개인 내력과 사건들, 가정사를 더듬어 올라가야만 합니다.
 
가족간의 애정 관계 재 구성
 지금부터 위의 상황을 전제로 이 가정안에서 부모와의 애정관계를 재 구성해 봅시다. 먼저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권위, 아버지의 용기, 아버지가 지닌 책임의식 등은 가정 안에서 자녀들이 건전하게 성숙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용감하게 삶에 맞서고, 미래에 대한 굳건한 확신과 믿음을 지니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녀들로 성장합니다.  아버지의 부재는 일상 속에서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며 그 안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인생앞에서도 소극적이며 두려워하고 확신없이 자라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호의를 베풀고 감싸며 필요할 때 즉각적이며 부드러움을 만들어 내면서 이해력을 지녔고, 애정과 인생의 기쁨, 친절, 영성을 지녀서 가정에 이런 어머니가 부재한다면 자녀들은 폭력적이고 악하며 가식성 등을 지니게 됩니다. 소년이 어른이 되었을 대 그가 맺는 애정관계는 가정 안에서 흡수한 대로 이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아버지 어머니가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모법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경멸하거나 하대한다면 딸은 자신의 여성성을 거부하게 되고 아들들은 당연히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성숙하게 됩니다
 
치유하는 능력을 지닌 사랑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교회가 해방의 직무를 맡을 사제들이나 그의 협력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을 삶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써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적합하게 도울 수 있고, 그 문제들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사람들이기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기도회에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 사랑으로 그를 환영하게 되면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모습이 바뀌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사랑을 필요로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치유의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니 몇 주가 걸리더라도 감정과 정서적인 면이 지닌 문제를 잘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게는 때때로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매 주 면담을 하러 오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면담시간 자체내에서 즉시 이런 분석과 관찰을 하는 편입니다.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
두 번째는 무엇인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 낙태의 죄나 저지른 폭력행위 등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낙태 여성의 경우 세 명 중 한 명은 낙태의 죄를 고해합니다. 하지만 남성 중 누구도 타인이나 자신의 태아에게 저지른 살인행위에 대해 고해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숨겨진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며 사탄은  당사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이런 요소들을 기가막히게 활용합니다.  많은 여는 순간, 지은 죄에 대해 통회하고 성사적 사죄경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드리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 집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
가족 안에서 사별한 사람이 있었는지도 잘 살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가족간의 사랑의 관계 단절로 인한 트라우마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찾아와 하는 말이  그 어머니께서 이 여성을 출산하시던 도중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여성이 엄마가 되었을 때의 고통은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큰 악영향을 미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이 생산해 낸 상처 대처법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생산되는 상처는 고동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은 이의 영혼을 주님께 봉헌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최우선책입니다.  절대로 죽음과 관계를 맺으면 안됩니다. 이미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살펴 본 대로입니다. 죽음은 사탄이 우리를 속이는데 사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격랑의 고통과 위로받지 못하는 슬픔 울컥거리며 밀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칫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일 수도 있고 죽음 앞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죽음에 의한 상처를 입은 사람은 영혼에서 오는 기쁨이나 편안함을 느끼게 되면  죽은 이에 대해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경우 십자가 위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내 놓으신 사랑이 죽은 이에게 까지 확산되도록 예수님의 사랑에 그 고통을 봉헌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고 에수님의 부활의 빛 속에서 그가 살아있음을 보게끔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이가 주님께 봉헌식을 하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별이라는 아픔이 있지만 주님께서 죽은 이를 더욱 가까이 당신 성심에 두기 위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인식시켜서 죽음이 사탄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도록 인도합니다. 또한 사별을 주님으 뜻으로 받아드리게 함으로써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평화를 다시 회복할 수있도록 도와줍니다.
사탄이 죽음을 도구로 사용해서 사람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든 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한 아기 엄마가 아이와 사별했다면 죽음에 아이를 내 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맡긴 것입니다. 20살 아들을 둔 부부가 있었는데 그 아들은 늘 모욕적인 언사를 입에 달고 살았고 성당에는 더 이상 발도 들여놓지 않으면서 수상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7년 전 다른 아들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면담을 하면서 그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이 죽은 뒤 혹시 남편에게 한 번도 포용을 해주거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자식을 잃은 엄마들은 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기 스스로에게 기쁨이나 쾌락, 행복 등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다른 아들이 죽은 뒤 그 집안에서는 잔치나 파티, 모임 등이 사라져 버림으로써, 둘 째 아들은  7년이나 게속적으로 암울한 강제적인 장례분위기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견디다 못한 둘 째 아들의 반항이 이런 식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저는 그 부부를 제대 앞으로 데리고 가서 죽은 아들을 부활하신 주님께 봉헌하고 예수님의 사랑 속에 아들을 드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그 뒤 가족 안에 미소와 기쁨이 되돌아 왔습니다. 그 부부가 저를 찾아왔던 이유는 둘 째 아들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혹시 누군가 아들에게 해악이 되는 주문을 걸은 게 아닌지 알고 싶어서 였는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경우,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질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편안히 떠났는지 아니면 죽음을 거부하면 떤났는지 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지위 안에서 임종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가 자행된 집들에서는 자주 음침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낙태의 경우
한 집안에 낙태행위들이 자행되었었다면 그 주님께 이 행위를 봉헌할 필요가 있으며 낙태된 태아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즉,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가족의 한 개체로 인정해 주고, 부모가 사랑을 주지 못하는 입장이니까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키우시던 모성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주십사 성모성심에 봉헌하고,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움에 처한 아이를 돕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주교들은 이런 봉헌 뒤에  통회의 사랑의 실천 행위로 어려움에 처한 고아들을 매 달의 기부금으로 도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아세례를 집전합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언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죽음을 통해  사랑의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예식을 거행하다라는 의미는 예수님에 의해  완성된 구원의 활동 속에 죽은 태아가 접촉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파스카의 희생으로 에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그 선익의 상속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 속에서 이렇게 죽은 태아들은 하느님의 자녀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며 결국은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태아들을 위한 미사 성제를 거행하면서  파스카의 신비안에 그들을 봉헌하고 구원활동이 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위는 여러 번에 걸쳐 반복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그들에 대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려면 가장 먼저 그들의 삶과 그들에게 주신 선물과 그들을 통해 주신 선물에 대해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성 예로니모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그들을 주셨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을 잃었다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들이 우리 곁에 있었던 사실에 대해 감사드립시다.”  
죽은 이들의 죄의 용서를 위한 기도- 생전에 그들이 지은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죄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우리가 대속하면서 주님 대전에 전달 될 수 있도록 봉헌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주님의 자비가 머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그들의 죄의 용서 외에도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의 일치를 통해 영원한 생명에 들 수 있게 치유해달라고 청합니다.  거룩한 미사 봉헌은 가장 효과있는 기도지만 그 미사에 참석하는 가족들과 교회가 죽은 이의 용서를 빌고 대속하는 깊은 마음을 지니고 참여해야만 진정한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자선활동과 기부는 죽은 이들이 전대사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아주 효과있는 것입니다.
미신, 잡신들과의 관계로부터 해방
죽은 이들과 관계되어 한 가지 더 숙지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생전에 주술사, 점쟁이, 복술가, 요술가 영매를 통한 접신, 무당 등등을 찾아다니고 이런 의식을 행하지 않았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들은 죽음 이후에도 사탄과 죽은 이를 묵어두는 사슬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최종적인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과 부활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은 자신들의 죽기 전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속죄를 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가 그들을 위해 전구하고 주님께서 그들을 묶고 있는 악의 사슬을 예수님의 보혈의 권능으로 풀어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그 보혈은 하느님께 죄인들의 해방을 위해  값을 치루신 댓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앞에서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교회가 대속할 수 있으며 그들이 천국으로 인도 될 수 있도록 주님 대전에서 그들을 위해 전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강력함
예수님의 보혈과 그분의 생애는  우리를 위해 모든 권능과 영광을 내놓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것은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어떤 누군가를 위해 혹은 어떤 장소나 어떤 상황을 위해 예수님의 보혈 호칭기도를 드리게 되면 그 모든 현실들을  주님의 영광스러운 현존 안에 묶어두고 보기종시키는 것이 되며,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을 위해 사탄의 모든 힘을 보혈 앞에 복종시키는 행위가 됩니다.  묵시록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박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묵시 12,10-11) 그분의 나라와 활동도 우리 지상의 삶 이상으로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 콜로사이 인들에게 이런 서한을 써보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콜로 1,19-20) 다시 말해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은 ㅇㅔ수님의 왕권 아랭ㅆ는 것이며 당신 보혈로써 성부께서 모든 사람들의 빚을 갚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계속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빛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씁니다. 귄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 (콜로 2,14-15).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은 그리스도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며 그분과 함께 죄속에서 죽었고 사도의 바오로의 말씀처럼 완전하게 예수 그리스도로 재 충전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 8,16-17). 성인들의 통공과 그들의 존재, 예수님의 보혈께 드리는 그들의 힘있는 전구로써 교회는열매를 맺습니다
위에서 결혼 생활에서 오는 불륜관계, 폭려, 살인, 낙태와 접신행위와 미신 행위 등의 폐해를 살펴보았는데 지금부터는 저주들에 대해 고찰해 볼 시간입니다.
 
저주들
열정적으로 말을 하면서 즐길 때 우리는 이것을 수다를 떤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 우리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이나 내밀함으로부터 흘러나온 말, 영의 말은 말한 그대로 실제하게 되고 실현된다는 사실입니다. 미사중에 사제가“이는 내 몸이다!” 라고 선포할 때 그대로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꿰뚫는 말씀을 선포하시고 이를 말씀하신대로 실현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사탄이 한 말도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 어머니가 화를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으면 그대로 됩니다. 만약 이 말이 쓸데 없는 수다에 지나지 않았다면 바람에 나부껴 갔을테지만  마음 깊은 곳의 분노에 의한 말이었다면 그 말은 힘을 지녔고, 그 강도가 약할지라도 분명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어떤 남성이 제게 “저희는 두 형제입니다. 그런데 제 조카에게 너는 암으로 죽어버릴 것이라는 저주의 말을 하셨는데 실제로 그 조카가 암으로 죽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딸에게는 평생 노처녀로 살거라는 저주를 하셨는데 마흔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번 약혼을 했지만 한 번도 결혼으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배우자로서의 모든 학식과 미모, 부를 겸비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남자들이 저희 집 딸을 회피합니다.”
남편을 죽였다며 울부짖는 여성을 제게 데려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교통사고 그 남편이 목숨을 잃었는데 컨테이너에 깔리는 대형사고였습니다. 그 여성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항상 남편을 볼 때마다 화가나면 죽어버리라고 하면서 그냥 죽으면 아까우니까 내가 보상금이라도 타먹을 수 있게 죽으라.” 고 했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면도를 하고 있는데 오늘 면도하는 게 마지막일거라고 저주를 했답니다. 그날 면도를 마친 남편은 자동차로 외출을 했고,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 대형 컨테이너가 덥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저주를 퍼부은 대로 마지막 면도를 했고 대형교통사고로 보험회사로부터 돈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한대로 되었습니다. 저주의 말은 그대로 실현됩니다.
혼자 사시는 나이든 자매가 전재산을 변호사에게 맡겨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사는 할머니인 것을 안 변호사는 모든 재산을 갈취하려고 했습니다.  변호사의 계책을 알게 된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 변호사가 온몸이 마비되어 꼼짝못하다가 삼일 째 되는 날 죽게 해달라고 저주를 섞어 빌었습니다. 이런 저주를 퍼부은 날 오후 그 변호사는 갑자기 마비 증세가 왔고 삼 일째 되던 날 죽었습니다.
한 여성이 사위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얼마 지나서 갚아달라고 요구를 했지만 그 사위는 무슨 소리냐며 발뺌을 했습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이 여성은  잠자리에서 나자빠져 죽으라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실제로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사위는 침대에 누운채로 척추가 부러져 죽었습니다.
이런 예들은 사탄이 활동하는 범위가 얼마나 넒고 어떻게 이런 영역을 밝혀 낼 수 있는지 우리를 돕는 예들입니다. 특히 저주의 말은 지나치게 자주 우리들의 가정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원한을 품은 사람들끼리도 그렇습니다. 빈곤에 시달리며 억압받는 사람들이 도저히 출구가 없다고 여겨질 때 자기방어수단이나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저주의 말을 쏟아냅니다.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우리 사제들과 부모, 대부대모는 어린 아기에게 손을 얹습니다. 즉 아기를 하느님의 왕권아래 둔다는 의미로써 그분의 지배하에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죄를 짓거나  어떤 특정한 죄를 범하였을 때 혹은 저주를 일삼았을 때 자기 자신 혹은 타인을 사탄의 지배하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탕녀와 결합하는 자는 그와 한몸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6, 16-17). 성령의 빛 속에서 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고찰한 것처럼 영은 친교를 생산해 냅니다. 만약 그 영이 거룩하다면 거룩한 일치가 이루어지지만 사악한 영이라면 사악한 관계와 죽음을 고리를 같고 영은 절대로 꺼지지 않으며 파괴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접신하는 장소나 무당들의 굿, 점집등을 찾아다니면서 이런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면 당장 끊어버려야 합니다. 행여 이런 행위들이 죽은 이들이 했었던 것들이라면 교회 혹은 그 가족들이 그들을 위해 대속할 수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의 죄를 속죄하고 예수님의 보혈이 그들을 죄를 씻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그 죽은 자들이 가족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죽었다면 그들의 영혼을 위해 주님께 가족들의 용서를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이런 모든 행위들은 악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성 요한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섷사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되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1요한 1,7.9.2,1-2).  구원 받은 자들에 대해서 묵시록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나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 (묵시 7,14).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강연을 하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진짜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들의 죄보다도 훨씬 더 큽니다.” 저의 대답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그 형제가 저를 찾아와 고백성사를 청하고 두 가지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한 여자를 사랑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소유하고 싶었지만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이 남자는 사탄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대신에 그 여인을 소유하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두 번째 죄는 아들에 대한 소유욕이 지나친 어머니를 둔 까닭에 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다가 어머니가 심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약을 과다복용시켜서 죽이려고 시도를 했답니다. 결과는 천만다행으로 죽음을 면했는데 그래도 자신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거였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그 형제에게 모든 것을 끊어 버리라고 하면서 이런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 주님, 과거의 제 모든 행위를 끊어버립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께 순명하겠습니다.” 미신, 접신행위를 했던 이들은 당장 이런 행위들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기도하고 안수를 해주고 구마기도를 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이 악을 당장 끊어버리도록 인도하는 것이며, 진심으로 통회하고 속죄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향해 완전히 개방하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주님께 복종시키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면서 사탄의 모든 영향으로부터 끊어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케이스들이 해결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필요하다면 해방기도 혹은 구마기도를 합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의 삶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해지도록 항상 성령을 청하는 기도로 모든 기도를 마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끝.
번역. 남기옥 마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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