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13.04 구마 심포지엄 6 - 사탄이 활동하는 분명한 장소 > 교육

본문 바로가기

2013.04 구마 심포지엄 6 - 사탄이 활동하는 분명한 장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로사
작성일 14-10-02 09:00

본문

2013.04 구마 심포지엄 6
 
구마심포지엄 제 6 강의
 
사탄이 활동하는 분명한 장소
성모님의 모성의 보호가 이 구마심포지엄에 함께 하고, 악령의 침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강력한 성모님의 전구가 함께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전구해 주시도록 청합시다.
지금부터는 사탄이 활동하는 확실한 장소들에 대해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신 행위 Occultus
미신 행위는 분명 사탄의 활동이다. 혼들을 불러내는 의식, 영매를 통한  접신, 강령술, 손금을 보는 행위등을 행할 때 이런 모든 것들 속에는 항상 중간적인 역할을 통해 사탄과 연결되게 됩니다. 접신의식을 할 때 혼령이 올때 모습과 나갈 때 모습이 다르지만 그 혼령을 불러낸 사람이나 접신한 사람과  묶여 있게 되면서  혼백을 불러내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은 하지만 실제로 이 의식은 항상 피해를 입힙니다.
첫 번째 피해는 이런 의식 뒤에는 사랑의 불가능성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성생활은 가능하겠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진성한 사랑의 일치는 불가능하게 합니다. 누구든지 요술 -요술행위는 물질의 조종- 하는 사람은  사랑의 능력을 잃습니다.
이미 고찰한 것처럼 영은 물질세계에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이런 요술 행위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혼령들이 씌어야 하고 자신들의 생활을 완벽하게 이런 귀신에게 복종시키지 않으면 초월적인 능력의 힘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그 자체로써 속임수이고 이를 행하는 사람은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써 물질을 조종하기 위한 힘의 훈련입니다.  
성서에서는 주술이나 마술, 문신도 금하고 있으며 특히 문신은 단순한 몸의 치장을 넘어서서 문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어떤 주술적인 상징들을 그려넣게 되는것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민족들의 역겨운 짓을 배워 그대로 해서는 안 된다. 너희에게는 제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와, 점쟁이와 복술가와 요술사와 주술사,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 자와 혼령이나 혼백을 불러 물어보는 자와 죽은 자들에게 문의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짓을 하는 자는 누구나 주님께서 역겨워 하신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런 역겨운 짓 때문에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신다.” (신명18,9-12).  레위기에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너희는 점을 쳐서도 안 되고 요술을 부려서도 안 된다. 너희는 관자놀이의 머리를 돌아가며 깎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수염 끝을 잘라서는 안 된다. 너희는 죽은 이를 위하여 너희 몸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이교도 우상신에게 자식들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던 행위로써 몰록Moloch이란 우상신에게 유태인들이 하던 제사행위) 너희 몸에 문신을 새겨서도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 누가 영매나 점쟁이에게 가서 그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면 나느 그자에게 내 얼굴을 돌려 그를 자기 백성에게서 잘라 내겠다. “ (레위19,26b-28; 20,6 ) 너희중 남자든 여자든 영매나 점쟁이로 나서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들을에게 돌을 덪녀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값으로 죽는 것이다.” (레위 20, 27) 사울왕은 예언자 사무엘의  격려에 힘입어 왕국내에 있는 영매와 점쟁이들을 나라에서 몰아내었다고 했습니다. (1 사무엘 28,3 참조). 이를 위반하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했습니다(1 사무 29.9 참조) 이런 금지조항은 당시 유태인들 사이에 있었던 광범위한 미신의 등장과 주술행위를 사용함으로써 이스라엘백성과 이교백성의 구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cfr Gdc 6,25-32;  레위 20,6 참조; 2열왕 23,1-36참조). 이런 행위들은 백성들에 대한 저주를 불러오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주변환경과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죄악시되는 행위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지배에서 빠져나와 비밀스런 혼백의 영향 혹은 그 힘에 복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어떤 특정한 동양 종교들(저는  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음), 예를 들어 불교에서의 어떤 특정한 고행의 수행을 할 때 통상적으로 이를 행하는 사람의 믿음에 따라 영들을 불러내기 시작합니다(이에 관해 모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음).  이런 영들은 특정한 육체적인 힘을 관장하고 있고, 지적인 활동과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에도 힘을 미칩니다.
 
감각의 변질
우리는 감각의 변형, 청각 감지의 변화 등을 느꼈을 때 우리는 사탄의 활동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 낼 수 있습니다.  원거리의 목소리 감지, 냄새 혹은 환시 등은  감각이 거리상 도저히 감지해 내지 못하는 것들을 인식할 때입니다. 이런 경우 악마의 존재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마음을 비추시고 지식의 은사를 주십니다. 반대로 사탄은 감각을 변질시키고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가려진 것을 알아내거나 미래를 점치는 능력 등을 얻기 위해 이런 존재들의 하수인이 되어 버립니다. 많은 경우 사탄은 냄새를 풍깁니다. 하지만 이것은 감각의 변질은 아닙니다. 냄새는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알다수녀의 심장 전문의가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로마 순례를 하자고 인도하면서 오상의 비오신부님 성상을 선물했습니다.  로마로 가는 도중 성상에서 갑자기 향기가 나기 시작했고,   지금도 이 성상은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알다수녀는 오상의 비오 신부님께서 분명 도와주고 계시다는 증거일거라 했고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 경우 감각의 변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사건 자체는 객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향기는 모든 사람이 다 맡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의 변질에 어떤 영적인 존재가 있는지 여부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비논리적인 느낌들
비논리적인 느낌들 속에서도 사탄이 활동하는 장소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심포지엄 내내 언급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최고의 정신건강을 누리는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갑자기 도로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받습니다. 혹은 자동차로 묻지마 살인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시달립니다.  이런 현상들 이면에 어떤 정신질환 병력이 없다면 대부문 악령의 존재가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탄이 활동하는 영역들은 숨겨져 있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이미 고찰한 것처럼 유혹들은 세 가지 원천을 지닌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즉,  비논리성이 있는 곳에는 분명 사탄이 활동합니다. 영적인 압박감, 분명한 이유가 없는 경우 등입니다.
 
중독
사탄의 간접적인 활동은 중독증 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중독, 마약중독, 스포츠 게임, 음악중독, 집착적인 증세를 보이는 학구열,  쉽게 버는 돈, 지나친 돈의 애착, 음란하고 문란한   섹스중독, 모독적인 언사를 지닌 악습 등입니다. 많은 경우, 중독증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중에는 성수로 축복한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혹은 구마예식을 통해 축복된 십자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그 침대에서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는 현상도 보입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사탄의 영향하에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중독 즉, 담배에 노예가 되는 상태라서 담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담배에 매여 버린다면 사탄의 영향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다양한 악습에 묶인 노예 상태도 그렇습니다.
 
무질서한 감정
상당히 민감한 영역으로써 이 감정부분입니다. 자연적인 감정과 사탄에 의해 솟구치는 감정의 분별이라는 어려움 때문에 현실적으로 민감한 영역입니다. 저를 찾아온 어떤 남성들은 하소연을 합니다. 부인을 사랑하면서도 이유없이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이 영역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욕정과 사랑을 분별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남성이 어떤 여성을 죽도록 따라다닌다면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남녀가 쌍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이들은 정식 부부가 아닌 동거 중이거나 본 별거 중이면서 불륜 관계 중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제게 찾아와서 자신들의  사랑에 불이 잘 지펴지지 않으니 축복기도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남성이 찾아와서는 어떤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아내가 하도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도저히 집을 떠날 수가 없더랍니다. 아내까지 데리고 왔고, 그 아내는 내 앞에서 펑펑 울기 시작하자 남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 보세요. 이여자가 이렇게 펑펑 울어대니 제가 어떻게 편안하게 다른 여자랑 떠날 수가 있겠어요? 제 아내 좀 설득시켜 주세요 “ “이거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과는 전현 다른 일, 즉 통상 저는 사제로서 오히려 부부를 일치 시켜주는 일을 합니다.” 제 대답이었습니다.  그 남성은 아내를 사랑했지만 다른 여자를 향한 욕정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부부애에 대해 고찰해보기 위해 잠깐 멈춰야 합니다. 오늘날 사랑이란 표현의 진정한 의미를 잃은채 욕정과 혼동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젊은이들이 눈만 맞으면 언제든지 무분별한 섹스를 위해 함께 동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 결혼을 제의할 때 그들의 관계를 끝납니다. 많은 경우 이런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눈이 맞아 동거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진정으로 사랑하는데 도움을 주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항상 비슷했습니다.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본능
이해를 돕기 위해 세가지 기본적인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생식성-자신의 생식기능을 이용한 번식과 생산의 가능성입니다. 13살 된 여자 아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수는 있지만 아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13-14살 된 남자 아이가 자식을 가질 수는 있지만  평생 결혼생활이란 선물 속에서 자신의 책임을 완수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연령대의 남녀 아이들은 생물학적으로 생식기능이 발달했지만 성적으로는 성숙한 상태가 아닙니다.
두 번째. 관능성- 무엇인가를 이용하여 타인이 자신에게 쾌락적인 요소를 얻도록 하는  기교입니다. 관능성은 타인을 환영하고 타인에게 선물이 되는 사랑하고는 정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바로볼 때 (혹은 그 반대) 상대가 쾌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사랑의 선물이란 개념이 아니라 이런 관계는 욕정, 이기심, 관능욕이라고 합니다. 현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관능성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로 여겨집니다. 뉴에이지는 개인이 자신의 입맛대로 , 욕구대로 혹은 자유자재로 만족감을 위해 쾌락을 누릴 수 있다는  교리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이 지닌 자유가 제재받는다고 여깁니다.   한 남성이 자신의 쾌락에 의해 한 여성에게 접근했다가 또 다른  여성이 현재 여성보다 자신의 쾌락과 욕구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충족시켜 줄 때 현재 여성을 떠납니다.  그의 목적은 사랑의 친교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충족이기 때문입니다. 막 결혼한 부부가 신혼여행을 가서 신랑은 신부에게 선물을 했는데 다름아닌 스와핑클럽이었습니다. 즉 그 클럽은 서로 다른 배우자들이 서로 원나이트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클럽으로 신랑은 신부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일치가 아니라 에로틱한 경험을 풍부히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각자가 지닌 에로틱한 욕구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이런  일상의 탈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환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부적절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상황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결혼생활 내부를 들여다보면 부부생활을 위한 사랑의 일치가 아닌 어떤 특정하고 숨겨진 형태의 관계들이 존재하며, 변태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자극하기 위해 단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사랑의 일치나 친교와는 거리가 먼 관계입니다. 어느 날 저는 한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행동을 감지하고 면담을 하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던 그 아내는 남편의 쾌락과 성적 욕구만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다양하고, 무질서하며  변태적이고 불결한 성행위들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행위들은 악의와 공격성, 천박한 행위, 히스테리, 우울증, 정신적 방해 등등을 받게 됩니다. 면담을 하던 그 자매는 일언반구도 없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그 남편과 면담이 시작되면서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제 아내가 이제야 그런 행위들을 깨달았다고 하던가요?”  그 아내는 남편의 진심을 알고 난 뒤부터 행동을 바꿨고 지금은  이타적이고 침착하며 영육의 균형과 대화 가능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혼생활은 사랑의 공간이지 합법화된 윤락 장소가 아닙니다.
세 번째 성sexualitatis–  성은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타인과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성은 무엇보다도  한 인간개체의 성 정체성인 여성 혹은 남성입니다. 남성은 남성답게 행동하고 여성은 여성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남성은 상당히 이성적이고  와일드 한 것처럼 여겨지고 여성은 훨씬 더 직감적이고  직관적입니다. 성은 영적인 면과 성격, 덕 등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물이 포함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내적인 모든 풍부함을 감각들을 통해서 드러내고 교환하며, 상호 나눕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어린 아이가 두려움때문에 예민해질 때 아버지가 편안하게 웃어준다면 아이는 금새 안정을 취하고  침착해집니다. 아이에게 용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여의사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13명의 아이들에게 심전도를 해야 했을 때 아버지들이 아이들과 병원에 오라고 했답니다. 엄마랑 오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들러붙어서 징징대면서 보챈다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충만한 일치 육체적인 일치도 마찬가지로써 상호 완전한 일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과 함께 우리가 지닌 성을 사용합니다. 우리 감각을 통해 드러내고,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과 지닌 친밀함도 외적으로 서로와 통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닌 성이 건전하다면 다른 이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성이 병들었을 때 부정적인 감각이 장악하게 되어 타인과의 관계도 불건전하게 됩니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셔서 인사만 건넸을 뿐인데 성령께서 엘리사벳위에 내리시고 그 태중에 있는 아기가 기쁨에 뛰어 놀았다는 사실을 상상해 봅시다. 여기에서 주요하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마리아를 통해 엘리사벳에게 통하셨다는 사실은 바로 성모 마리아의 인간성이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바로 진정한  성이 존재합니다.  결혼생활안에서 남성과 여성사이에 사랑의 계약이 이루어지고 남편이 아내에게 자신을 선물로 주면서 아내와의 계약이 성립됩니다. 친밀한 일치의 행위는 아내에게 ‘나는 당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부터 완전히 당신 품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는 이런 남편을 받아드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교환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일치를 이룹니다.  반대로 성행위를 한다라는 의미는 다른 사람의 육체를 사용해서 본능적인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이며, 이것은  사랑의 일치와 선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표현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동의한 행위라 해도 이것은 감각만을 사용한 것입니다.
 
결혼
어느 날 가정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베또리 추기경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추기경님, 이제는 교회가 결혼생활에서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부부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자 결혼생활에 있어서 창세기의 기록대로 본다면 부모의 집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번 읽어 봅시다. “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창세  2,24). 이것은 세가지 의미로 해석됩니다.
1° 결혼은 부모로부터 분리되는 것으로써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교회법은 그 혼인을 무효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모든 가정은 자율적이고 자치적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가정은 다른 가정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하느님 이외에 그 어떤 다른 권위로부터 장악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한 국가도 그 가정을 간섭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가정은 첫 번째 교회이고 첫 번째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꾸려진 가정이 시댁 혹은 친정으로부터 간섭을 받는다면 그 가정은 자율적이지도 자치적이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가정으로써 정당하게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  
3°  남편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은 아내가 되고, 아내도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은 남편이어야 합니다. 결혼생활로 남편은 더이상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삶에 선물이 되어 준 것입니다. 남편이 중요한 사람이고 대단한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혹은 대단한 정치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은 절대적으로 아내여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전문분야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전문분야를 사랑의 첫 대상으로 여기고 두 번째가 아내가 된다면 그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명령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전 수상이었던 토니 블레어는 14살 아들이 맥주집에서 만취 상태로 인사불성에 빠지자 된 채 발견되자 그는 8일 동안이나 공무를 멈추고  신자 아버지 답게 아들을 돕기 위해 내내 곁에 있었습니다. 그 뒤 토니 블레어는 카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하느님의 법은 남편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이 아내라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비로소 자신의 부모이고 전문분야고, 직위 등등입니다. 남편이 지나치게 전문분야게 힘을 쏟고 있어서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을 바꿔야 합니다.
아내의 첫 번째 사랑은 자식들이 아니라 남편이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묶어놓으신 것은 사람이 풀 수 없다.”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어떤 다른 사랑이나 다른 관심거리들이 끼어 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가정과 기도회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고찰인데 기도회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느끼고 계시겠지만 기도회에 참여하는 남성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성들로 가득찬 기도회입니다. 남성들은 가뭄에 콩나듯 참석합니다.  오히려 많은 남성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제 아내가 기도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알아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예수가 제 아내를 빼앗아 갔는데 도대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 아내가 기도하러가서 친구들도 만날시간은 있으면서 제가 함께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가자고 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시간이 없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가정은 첫 번째 교회로써 본당일이나  기도회를 핑계로 절대로 부부를 단절시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감정의 질서
하느님은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자 생활 속에서 하느님은 항상 첫자리에 계셔야 하며 두 번째는 각자 양심의 자유입니다. 결혼생활이 양심을 짓누르거나 옭아맬 수 없습니다. 양심은 하느님으로부 오는 인격적 고귀함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양심이나 아내의 신앙에 반하는 일이나 죄와 무질서한 행위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로써 남편의 양심에 반하는 일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결혼생활의 일치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각 인격 개체의 양심의 자유를 우선시 한 뒤에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부부간의 사랑의 일치는 불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을 위해 교회 활동들이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결혼생활이 우선입니다.
가끔씩 이와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를들어, 제가 맡고 있는 본당에 냉담자인 한 형제는 원래 막스주의자로 자랐지만 아내는 기도회에 열심한 자매입니다. 이 자매는 전보다 더 남편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회가 있는 날 저녁 손님이라도 집에 찾아올라치면 남편이 “여보, 괜찮아요. 내가 손님들과 함께 있다가 설거지까지 다 해놓을 테니 기도회에 다녀와요. “ 기도를 통해서 그 가정에 하느님께서 사시게 된 것입니다.  
 
신앙과 인생의 둥지인 가정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과 고찰이 필요합니다. 가정이란 영역은 생명이 시작되어 태어나며, 발육.성장하며, 감정과 신앙생활, 인격형성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성격이 심겨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무질서를 통해 사탄이 많은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간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이 갈라지고  영적인 상처를  자극하거나  사랑의 결핍,  부정과 불륜 등등,  진정한 사랑이 결핍된 곳에는 항상 사탄이 또아리를 틀고 가족간의 감정의 골이 생기고 자식들이 집을 나가거나 자식들이 신앙 생활을 멀리하고, 증오와 회한이 난무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질서가 부재한다면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한다해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사탄은 무질서가 존재하는 곳에 숨어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주의 희생양이 되면 그 첫 번째 증상은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아온 집으로 돌아가야지.’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지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올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오,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것이다. “ (마태12,43-45).
 
가정의 쇄신
우리가 영적으로 고통받은 사람을 도와주고자 할 때 건강한 분별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개인 생활 안에 하느님의 질서 혹은 사탄의 무질서가 존재하는지 여부입니다. 구마를 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고 그분의 용서의 선물을 제공하고, 마음들의 화해, 욕정과 윤리적 무질서 등을 제거하면서 하느님의 질서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건강하고 주님의 성령의 질서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에는 신앙안에서 성숙하고 생활하기가 월등히 쉽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남편과 아내가 주님의 기쁨안에  서로에게 선물이  될 때마다 그들의 사랑의 서약을 쇄신시키는 것이며 이런 서약은  죽음만이 파기할 수 있습니다. 혼인생활 100%를 분석하다보면 극소수의 부부만 하느님의 성령의 법대로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쇄신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으로써 가정이 무질서 하게 될 때 사탄이 또아리를 틀고 마음대로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가장먼저 가정은 삶의 거룩함을 되찾아야 하고, 하느님의 질서 와 구원을 되찾아야 합니다. 명예만을 찾는 가정이 아닙니다.  가정안에서 자녀들에게 공부만 강요한 뒤에 부차적으로 신앙생활을 시킨다면 익덧은 죄입니다!
 
질병
사탄이 몰래 또아리를 튼 곳은 질병으로써 그 질병이 늘 자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예수님께서 악령의 지배하의 고통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면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악령의 직접적인 방해에 의한 질병을 알아보는 절대적인 분별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고 있었는데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면서 고통중에 있던 그녀를 도와준답시고 친구들이 그녀를 데리고 영매를 찾아가 혼령을 불러내는 의식을 한 뒤부터 머리속이 시끄럽고 괴성이 들리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와 면담을 하면서 무당이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이 자유를 주시고 구원하신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그 여성의 머리위에 안수를 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오니, 이 자매의 머릿속에 어떤 악령이 잠재해 있다면 당장 물리쳐 주십시요.”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더니, 머리속이 깨끗해진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를 일으켜 바르게 무릎을 꿇게 하고 다시 안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 자매의 오른쪽 다리의 고통의 어떤 악령이 원이 된 것이라면 당신의 이름으로 쫓아주십시오.”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가 일어나서는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매는 정상적으로 잘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질병의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사탄이 숨어 또아리를 트는 병은 특별히 정신질환입니다. 이 심포지엄에 참여하신 여러분, 단언컨데 많은 젊은이들이 그동안의 감정적 무질서와 변태적인  행위들을 버렸을 때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문제로부터 해방되면서 균형을 되찾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윤리적 무질서와 심리적 방해 사이에는 연결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직접적인 활동
사탄의 활동이 간접적인 형태는 속임수, 거짓, 방해들 등 다양한 방법이 있믕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방법으로도 활동합니다. 이런 직접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것만을 나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염
어느 한 집안이나 장소에서 사탄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경우를 사탄에 의한 감염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성령쇄신 기도회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120명이나 되는 저희 기도회 회원들이 호텔을 빌려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밤중에 이상한 소음때문에 모두가 잠을 잘 수가 없었, 다음날 아침  모든 회원이 수면부족으로 피곤하고 신경까지 예민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날 저녁 저는 물을 구마예식에 의해 축성을 하고 호텔 방마다 모든 사람들을 나가게 한 뒤, 각 방마다 돌아다니며 성수예절을 했습니다.  그 날밤 모두는 아주 편안하게 잘 쉴 수 있었습니다. 이전 호텔 경영자는 비수기가 되면 미신행위와 혼령을 불러내는 영매의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주곤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건물에 방해가 생길 때 이를 감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의 중요성에 관해 저는 상당히 강조를 했습니다. 많은 설명 불가능한 현상들이 불륜이나 변태 등의 행위가 일어나는 집안에서 사탄에 의한 감염이 보고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살인이나 혼령을 불러내는 행위, 윤락행위를 하던 집 등 이런 종류의 행위가 일어난 집이나 장소에 사탄의 감염이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서로를 증오하고 모독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집안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혹은 사람들이 죽었거나 다친 전투가 일어난 장소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런 곳은 저주 받은 곳입니다. 폴란드 크라코비아 근교에 있는 아우츠비츠 수용소의 나치의 대학살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그 이후 그곳에서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전에는 새 한마리 지저귀는 것을 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낙태당한 태아를 버리는 땅이나 살해당한 사람들의 시신이 숨겨진 땅 등지에서는 죽은 혼령들의 존재가 의심되는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예레 3,2-3; 5,24-25; 로마 8,19-23참조).
또한 사탄의 직접적인 활동으로써 사람에 대한 활동입니다.
 
억압 Vexàtìo
-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던 한 여성의 이야기 기억하실것입니다. 그의 영혼은 자유로웠지만 몸은 억압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율을 느끼거나 할큄현상, 두들겨 맞거나 오상의 비오신부님처럼 상처를 입는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많은 성인들은 피가 터져나올 정도로 매을 맞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신비가인 성녀 줄리아니 베로니까Veronica Giuliani의 경우 사탄이 음식을 쥐들과 구역질나는 여러 동물로 변하게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건강을 잃은 이들도 있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들, 사업의 실패, 실업 등으로 억압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목수가 있었는데 문을 짜고 있었는데 매 번 만들고 있는 문이 망가져 있곤 했습니다. 물질적인 피해를 입기도 하고 육체적인 피해를 입기도하지만 영혼을 거드리지 않습니다. 사탄의 억압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자유와 윤리적인 자유, 정신적인 자유를 해를 입지 않습니다.
 
강박증
사고가 묶여있고 어떤 생각으로부터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증상인데 어떤 사물이나 어떤 주제들에 대해 집착증을 보이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어떤 여성이 이혼 후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는데  성행위를 하던 중 그 여성의 품 안에서 죽었습니다.  그 뒤부터 죽은 남성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졌을거라는 강박증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위로하려고 시도했고 용기를 주려고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 여성은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회 중에 그 여성의 의식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고, 사고의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생각이 묶여 있을 때 이를 강박증세라고 합니다.
복음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영역에 있어서 그들의 사고는 완벽하게 개방되어 있지만 유독 하느님의 것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하는 폐쇄성을 보입니다. 과학자들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심포지엄 첫  강의 때  말씀드렸던 것이 바로 초대 그리스도공동체에서 새로운 예비자가 입교하게 되면 먼저 구마식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드리는데 개방되어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교회는 예비자 입교식 때 이런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가 사용했던 방법을 재활용해야 합니다. 특별히 타 종교에서 개종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아시아 혹은 유럽에서 미신 행위나 밀교행휘를 일삼던 사람들의 개종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년동안 하느님의 말씀이 도저히 먹혀들어가지 않는 일도 가끔씩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해방기도 혹은 구마예식이 필요한 경우까지도 발생합니다.
 
에파타
교회사에는 세례예식 안에서 항상 에파타를 실천해 왔습니다. 에수님께서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였던 사람을 치유하시면서 “에파타!” 라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옛날 세례에식에서는 해방예식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예비자의 의식과 귀가 하느님의 말씀을 향해 열리게 하려는 목적이었고 신앙을 고백하도록 혀를 풀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유아 세례예식서에는 아직도 이런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주시는 주님이신 예수님,  하루빨리 당신을 말씀을 듣게 해주시고, 당신을 향한 신앙을 고백하게 하시어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게 하소서.
사고가 개방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에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항들은 당연히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좀더 나은 분별을 위해서 당사자의 마음의 개방성과생활 전반을 관찰하면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부마
사람의 의지가 묶여 있는 상태를 부마라고 하며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 의해 구속당해 자신의 자유를 본인의 의지대로 사용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어떤 일이 일어 날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하는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기까지 합니다.
뻬스까라의 주교님께서 어느 날 저에게  젊은 아가씨를 보내셨는데  약혼자와 사탄의식에 참여해서 스스로 사탄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고 합니다.  초월적인 능력과 타인의 미래를 점치는 능력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2년 동안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단지 그녀의 아버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집안에 있는 모든 성물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한 방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해를 받는 것을 알게 된 어떤 자매가 성호를 그으려고 시도하자 그 젊은 아가씨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서 가위로 그 자매의 목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본인도 눈치챌 정도로 자주 일어났고 제게 데리고 왔을 때 성당으로 들어오지는 않았고 제의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신뢰하도록 면담 중 격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제 말에 괴성을 토해내며 제의방 바닥에 쓰러졌고 계속 심한 괴성을 지르면서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다녔습니다.  우리는 그 아가씨에게 가까이 다가가 위엄서린 목소리로 사탄을 향해 입을 다물것을 명령하자 즉시 괴성이 멈췄습니다.  구마예식이 모두 끝난 뒤 당사자는 구마예식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뒤 여러 번 십자고상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종속

종속은 자의에 의해서 사탄과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약으로 종속되어 미신이나 사탄의식을 행하고 악마적인 활동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의에 의해 사탄에게 자신을 바치고 종속되며 그 결과 미래를 예측하거나 비밀스러운 어떤 것들을 알아내거나 보는 능력들이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이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하는 명령에 복종하는 절대적인 하수인이 되어  악마의 요구대로 해를 입혀야 하는 타인에게 이를 실행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악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고, 사탄에게 종속되어 종속관계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게 됩니다. 만약 이런 사탄과의 종속관계에서 탈출하고자 할 때는 가장 먼저 구마예식을 요구되고 전존재를 다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간의 삶에 어떤 방법으로 사탄이 스며들어오는지 고찰하고 등장하는 모든 케이스에 비추어 그 해결책들을 상세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번역. 남기옥 마르타.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est
04537 서울시 중구 명동길 80 가톨릭회관 618호 Tel : (02)777-3211 Fax : (02)777-3219 E-mail : nccsa@hanmail.net

Copyright © 한국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 CHARIS(CATHOLIC CHARISMATIC RENEWAL INTERNATIONAL SERVICE)-Korea All rights reserved.